박영택(미술평론가)

농촌적인 정서에 뿌리박은 그림


필자가 개인적으로 접하고 있는 작가들중 비교적 정규교육이나 일정한 틀의 수업기를 거친 도회지 출신의 작가들에 비해 시골을 고향으로 둔 그리고 선천적인 그림의 욕구를 간직했으나 거의 독학으로 배움의 열망과 그림에의 희망을 어렵게 키워낸 작가들 대다수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미술의 그 범람된 현상의 추수적 입장이나 ‘천위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라는 환상 대신에 거의 생득적인 귀소의식 아래 탯줄이 묻어있는 고향과 그 유년시절의 향수와 그리움을 빈번하게 작업의 주된 모티브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그런것들이 자신이 제대로 느끼고 알고 있고 그래서 표현해보고 싶다는 그런 본능인 동시에 자신의 감흥과 심미감을 뭉클하게 밀어내주기도 하고 어떤 사물이나 상황보다도 확실하고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아울러 자신의 이야기와 기억, 경험을 진솔하게 그림으로 풀어 내려는 순박한 의지로도 읽힌다. 또한 그를 빌어 한국적이라 일컬을 만한 삶의 자욱들과 흔적, 정서 나아가 민족적인 특질과 고유문화에 대한 다양한 뉘앙스를 들추어내는 그림으로 자신의 작업의 정당성을 찾아나가려 한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최근의 화단경향에 비추어 볼 때 사실 이같은 그림들이 효과적이기도 하고 이른바 한국성내지는 우리것에 대한 증폭된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작금의 문화적 분위기에서는 타당한 알리바이가 되어주고 있다는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물론 그로인한 특정한 소재의 편중과 그럴듯한 향토정서와 우리국토와 자연, 민속적 풍물과 사물들의 연출적 구성 및 그에 따른 상투적 심리의 우려냄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란 우려도 생긴다고 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작가의 최근작과 함께 첫개인전 작품들을 보고 있는데 고향에 대한 거의 무한한 애정과 그리움이 무엇보다도 눈에 확연히 검출되고 있다.

고향을 떠난 자로서 느끼는 회한 혹은 인생의 고비길에서 뒤돌아보는 인간의 보편적인 회상과 그에 연루된 무상함이 기조가 되고 있는듯한데 그래서인지 고향이나 유년시절이 회귀의 지향점으로서 안온한 모성적 세계를 이루어주고 있음이 그림 곳곳에서 검출되고 있다.

솔직히 자기가 보고 느낀 것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런 정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그림을 빌어 고스란히 화폭에 재현하는 동시에 무국적의 그림이 판치는 상황에서 나름의 긍정치를 도출해내려는 의지들도 은연중 개입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필자는 지금은 잊혀지고 훼손된 고향 그 삶의 터전에 대한 이 회고적 관심, 시간이 정지된 과거에 소속된 그 추억의 세계를 연상해내는 ‘소년기 유년기의 추억화된 사건과 삶의 흔적’들이 작가 자신의 삶의 여정과 반추되어 인생론적 은유로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기서 과거의 사로잡힌 욕망 그리고 그것들과 더 이상의 어떠한 유대도 상실한 자의 아픔, 회한들을 접하고 그로인해 그것 이상의 어떤 삶과 문화에 대한 부재와 만난다. 다시는 회복키 어려운 문화적 지각변동과 삶의 구성체의 심각한 변질로 인한 상실은 자꾸만 지난 농촌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동인인 것이다. 사실상 근대화와는 상관없이 유전되어온 농촌토착민들의 생활을 담아내려는 안타까운 시도로도 여겨진다.

임무상은 자신의 미적 정서를 생득적으로 싹틔워준 고향의 추억과 향수 그리고 농촌의 자연이 자신에게 심어준 정서의 힘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매번 고향을 찾고 그때마다 달라진 것과 불변하는 것, 기억의 완고함과 급격한 변화, 나다운 그림에의 욕구등을 토속적, 서정성 짙게 우려내는 그림으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고향인 그 벽촌오지의 풍광과 삶의 현장을 가시화하기 위해 독특한 조형적 질감과 같은 방법적인 고려를 동원하기도 하고 먹의 쓰임과 먹이 풍기는 유현한 정신적 여유, 심리적 침잠과 파장등도 아우르면서 일종의 문인화적인 정취와 담백함도 함께 조율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흡사 한편의 고향에 대한 시나 수필을 연상시키듯 문학적이고 그만큼 감상적인 뉘앙스를 혼곤하게 풍기고 있는데 근작에 와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진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유년의 기억으로 파고든다. 그런면에서 필자는 고향의 정과 기억에 눌린 작가의 소박한 심성과 천진한 미의식을 만난다. 그림이 세련되거나 특이하거나 독자적인 방법론으로 치장되어 눈을 끈다기 보다는 담담하고 담백하지만 오래들여다 볼수록 은근한 감칠맛으로 우리들의 시선과 감흥을 흔들어 주는 그래서 고향에 대한, 유년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각각의 개인들에게 일정한 시공간 속에서 삶에 대해 반추케해주는 매력이 있는 그림이라는 생각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찡한 애틋한 고향집에 대한 향수’(작가노트)에 젖은 이 작가의 그림은 ‘故鄕有情’에서 ‘鄕土詩心’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데 ‘고향유정’(1회 개인전, 1991)은 자신의 고향마을에 대한 사랑에 넘치는 기억의 강고한 마음의 배려를 업고 골목골목 혹은 주변 풍경들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곳의 질감, 감촉, 냄새가 묻어나오도록 치중하면서 또한 어린시절의 흔적이 스민 고향이 점차 사라지고 훼손되는 아픈 심정을 은연중 배려해 그 시간의 흐름앞에 마모되고 풍화된 삶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해두고자 하는 의욕아래 그려졌던 것 같다면 이번 최근작은 현상 이면에 드리워진 좀더 심정적, 정서적, 관념적 의식의 흔적들을 담아내려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옛이야기’, ‘초저녁’, ‘모정’, ‘기원’ 연작등이 그러하고 민족적인 유년시절의 놀이, 가족에 대한 향수등 정신적이고 문화적 감성의 층에 대한 것들을 단촐하고 명징하게 시각화해내고 있음을 본다. 동시에 고향마을 내지 그 외 지역에 대한 자연풍경등도 눈에 띄고 전작업에 비해 좀더 강조된 심리적 무게감 혹은 정서에의 유인을 만난다. 그래서인지 그림은 담백하고 간결하게 마음의 무게추를 감각적으로 떠낸 형상의 윤곽이 그래피즘과 흡사하게 그려져있다.

그 점이 필자에게는 그의 그림이 뿌리박고 있는 농촌적인 정서의 구체성과 포용력이 지나치게 관상적으로, 감상용으로 도상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져보게 한다. 농촌생활의 체험을 동시대의 세태와 연결지으면서 사회현실 속에 투영하려는 시도도 최근작에 와서는 약화된 것 같다는 느낌이다. 보다 깊이 있게 파고들어간 농촌의 현실, 이농의 아픔, 황폐해지고 퇴락되어 가는 동시에 그로인해 우리농경문화의 근본이 와해되는 그래서 우리의 민족문화와 삶의 정신적 지주가 허물어지는 상황을 집요하게 탐구해나가야 하지않나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예술은 궁극적으로 자기화한다는 사실의 체득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도 번지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작가의 연배에게서나 가능한 이 ‘고향시심’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미 요원한 무엇이다. 그의 추억의 묵은 창고에서 꺼내보이는 농촌공동체의 지난 모습들은 잔잔하고 지속적인 아름다움이고 중요한 의미만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작가들은 그림으로 그런 따뜻한 우리네 삶과 공간을 보듬기 보다는 특정한 유행과 그럴듯한 연출에 끌리고 있기에 이런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작금에 이런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을 본다는 것이 다시금 그림에 대해 곰삭은 예지를 추스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 같아 필자는 반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