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미술평론가)

양식화와 실경

임무상의 작품은 크게 두 갈래 경향을 보인다. 양식화와 실사의 두 경향이 그것인데 최근 2008년 <금강산 전>에서 두드러진다. <만물상과 구룡연 가는 길>이란 부제가 붙은 <금강산 전>은 금강산관광이 가능했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로 꾸며졌다. 금강산관광의 길이 열리고 많은 한국인들이 금강산을 찾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화가들 특히 한국화를 구사하는 화가들에겐 남다른 감회를 안겨준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역대 뛰어난 시인 묵객들이 금강산을 노래했고 금강산이 주는 장엄과 신비의 정경을 화폭에 옮겼다. 멀리는 조선조의 겸재 정선과 근대에 와선 소정 변관식이 남긴 금강산 그림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칭송되고 있다. 일반인들이 금강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생의 소원으로 여겼으니 자연을 화폭에 담는 화가의 경우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임무상도 “불현듯 수 백 년 동안 우리 선대화선들과 시인 묵객들이 다녀간 발자취를 고스란히 체득하는 것 같아 여간 감개무량하지 않았다”고 그 감회를 토로하고 있다. 그의 경력란을 보면 금강산 뿐 아니라 유독 한국의 자연에 대한 표제전의 초대가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컨대, <서울한강환경전><독도사랑전><한국의 미 그 아름다움전><토착과 그 정신전><청계천100호전>등의 표제가 말해주듯 한국의 자연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그의 작품의 주요 화두임을 눈치 챌 수 있다. 금강산전 역시 이 같은 작가의 남다른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을 파악케 된다.

모두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작품경향은 양식화를 추구하려는 일면과 자연에 즉한 순수한 감동의 기록으로서 실사로 나누이는데 금강산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이 두 경향으로 묶어볼 수 있다. 양식화란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파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독특한 표상체계로 발전시킨 것이고 실사란 자연을 보이는 대로 구사한 일종의 실경산수를 말한다. 임무상의 지금까지의 작품을 보면 양식화의 경향이 중심을 이루어왔다. 필세에 의한 반복적 반원의 구사는 마치 무덤의 완만한 형태를 연상시키는가하면 초가마을의 아늑히 잠겨드는 정감을 표상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택이 지적한대로 “형상의 윤곽이 그래피즘과 흡사”해 지나친 도상화가 다소 아쉽긴 하지만 “농촌 공동체의 지난 모습들은 잔잔하고 지속적인 아름다움”임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그의 작품을 떠받치고 있는 정감이 다름 아닌 “향토시심”임을 발견할 즈음에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과거,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가 메마른 현대인의 가슴에 따스한 한줄기 그리움으로 남아나게 된다. 그의 이 같은 원형의 필선은 금강산 그림에선 돌올한 기세로 나타난다. 일종의 그래피즘의 기법으로 산의 형상을 음각의 묘출로 시도하여 더욱 압축된 형상미를 구현하고 있음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실경의 금강산은 현실감에서 오는 웅장함과 신비로운 정경으로 금강산의 기운을 담담하게 묘출해 주고 있다.

금강산은 조선조의 정선이 구현한 전형에서 근대의 소정 변관식이 그린 풍부한 변형을 거치면서 하나의 뚜렷한 맥을 형성하고 있는 터이다. 불행히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남쪽에선 더 이상 금강산이 연면하는 소재로서 탈락되어 버렸지만, 일시적이긴 하나 금강산 관광을 통해 일부 화가들에 의해 금강산이 소재로서 각광을 받으면서 그 맥이 다시 이어질 조짐을 주고 있다. 금강산의 모양이 계절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만큼 금강산을 그리는 화가의 시점에 따라 또한 다양한 모양새로 등장하고 있음을 목격하는 터이다. 임무상이 그리고 있는 금강산역시 새로운 양식적시도와 더불어 실경의 금강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내 개인적인 기호로는 실경의 금강산에 한층 호감이 간다. 같은 금강산이지만 겸재나 소정에서 볼 수 없는 또 하나의 금강산을 앞에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사이긴 하나 운필의 기세로 보아 정경에 다가가는 감동적 시각이 현저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맑은 먹의 투명한 깊이가 금강산의 신선한 대기를 득의하게 표착해주고 있어 실감을 더해준다. 단순히 주어진 대상에만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고 장면에 내재된 극적인 구도를 예리하게 파악해내는데서 그의 또 다른 조형적 능력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의 앞으로의 작화의 진로에 주요한 작용을 할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