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오상수(자유기고가)

삼강(三江) 임무상(林茂相)의 산, 소나무, 달 그리고…

일엽지추(一葉知秋), 이른 아침 고요한 출근길, 문득 발아래 일순의 적막을 깨고 한 장의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가슴을 ‘쿵!’하고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길목에 떨어지는 가을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세상 한복판을 가로질러 흐릅니다. 무심코 걷는 발길에 온 세상 그 시간의 무게가 내 마음에 내려앉은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 천지 만물은 제 스스로 그렇게 변하게 마련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한결같기를 소망합니다. 발아래 떨어진 가을, 그것을 보며 나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그리고 또 나는 지금 어느 시간의 여울목을 흐르고 있는지, 마음 고요히 생각해 봅니다. 그리하여 지금 나의 자리와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을은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가 봅니다. 사랑하고 아파하며 애틋함이 고이는 삶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아까워’ 보이는 때…, 저 고운 단풍 빛깔과 파란 하늘, 그리고 맑은 햇살… 귀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정신없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온전히 우리의 곁에 머물러 있는 가족과 지인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 계절을 좋아합니다.

가을은 봄처럼 화사한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요, 성성한 여름처럼 생명이 출렁거리는 것도 아닌, 그저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그 자연의 묵언(黙言)이 오감에 스며듭니다. 그러나 쌀쌀해지는 바람결 속에서도 노랗게 피어나는 가을국화가 있습니다. 국화는 얼마간의 서리에도 여간해서 제 빛깔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인(先人)들은 우리의 이 토종 국화를 보고 군자의 풍모를 읽어낸 것이지요.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합니다. 변함없는 마음은 귀한 것입니다. 아, 내 앞에 변함없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 가을, 삼강(三江) 화백께서 그 ‘변함없음’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2011년 11월 14일(월)~11월 22일(화),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임무상 초대전》이 열립니다. 나 개인적으로 참 많이 기다린 전시회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삼강 화백의 그림을 보아왔습니다. 그때마다 그림 속에서 변함없이 감싸오는 정감을 느꼈고, 그래서 당신의 그림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젊은 작가, 삼강 화백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삼강(三江) 임무상(林茂相) 화백은 초창기부터 20년을 우리네 초가의 곡선 지붕이 갖는, 소박한 자연미와 인정 어린 이웃들의 생활공동체[隣]를 발견해 내고 그 곡선(曲線)의 어울림을 그 특유의 필치로 표현해 왔습니다. 임무상 화백은, 2008년 《금강산전(金剛山展)》(조선일보 갤러리, 2008.11.)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화풍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직접 금강산을 다녀와서, 아름다운 금강산의 실경을 담아낸 산수화에서부터 이를 추상화시킨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다양한 정서적 표현과 초월적 상상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작가의 깊은 사유의 세계가 융합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뜻 보면 간략한 필치로 형상화된 그림이지만 감상자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도 바로 그러한 화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경(實景)의 차원을 넘은 진경(眞景)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대상을 사실(寫實)하되 거기에다 작가의 얼[作家 精神]을 융합시킨 경지입니다.

이번 《임무상 초대전》의 주제는 ‘곡선미(曲線美)의 찬가(讚歌)’입니다. 그리고 중심을 이루는 소재가 ‘산(山), 소나무, 달 그리고’ 자연입니다. 우리들 주위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친숙한 소재들입니다. 그러나 그 소재를 취택하는 작가의 정신을 생각해 봅니다. '변함없는 자연'… 그중에서 산(山), 산은 늘 거기 있습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848m 에베레스트 정상(頂上)에 올랐던 에드먼드 힐러리도 ‘산이 늘 거기 있으므로’ 오른다고 했습니다. 산은 수많은 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변함없이 그렇게 있는 자연입니다. 삼강(三江)의 산은 금강산입니다.…

그리고 청정고절 낙락장송(落落長松), 소나무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눈 속에서 시퍼렇게 살아있는 소나무를 설송(雪松)이라고 하지요! 소나무는 늘 푸른 소나무입니다. 삼강 화백의 아뜰리에가 있는 금곡릉은 언제나 시퍼런 금강송이 그 정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화백은 그 금곡릉의 그 장대한 송림을 거닐며 금강산의 소나무와 그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달! 달은 또 어떠한지요? 변함없이 순환(循環)하는 빛의 덩어리, 차고 기울고 하는 시간성과 언제나 우리 지상의 어둠을 밝히는 공간성이 어우러진, 그러면서도 토속적인 정감이 묻어나는 전통적인 소재가 아닙니까. 작가의 눈길이 머물고, 마음이 머물고 그것이 붓으로 형상화된 자연을 보면 작가의 순정한 진경이 살아나올 듯합니다.

삼강(三江) 화백은 일흔이 훌쩍 넘은 청년(靑年)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변함없이 젊음의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 힘찬 필력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삼강은 20년 전에 볼 때나, 10년 전에 볼 때나, 그리고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분 앞에서 나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실례가 되는 일입니다. 꼭 연륜(年輪)을 이야기하자면 그림 속에 나타나는 ‘예술적 경륜(經綸)’을 말해야 합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 유연하고 호방한 필치 속에 드러나는 그 그림을 두고 시간의 무게를 말해야 합니다. 이 가을,《임무상 초대전》이 곧 막을 올립니다. 우수하고 역량 있는 작가만을 초청하여 행사하는 서초동의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삼강 화백의 작품을 초대하는 전시회입니다. 개막식은 2011년 11월 14일 오후 5시 30분입니다. 자꾸 행복한 예감이 듭니다.